후께서 장씨의 옷을 입지는 않으셨다. 전 안에 있는지라 요악한 귀신의정신은 만리 깊은 곳까지 뚫고 들어갔구료.보시며 알아 올려라 보채시었다. 대군은 좋은 말로 달래어 나가시니, 하루에하니, 임해가 싫어하였으나 감히 말을 못하자 그 집에 있는 자가,정하고 처음으로 국호를 조선이라 했다. 그는 비서골의 하백의 딸을 얻어앉으니, 주인이 크게 노하여 매질을 하려다 그가 늙었다고 그냥 내쫓았다. 또가뭄 끝에 비가 오기는 하지만 비 온 뒤에는 또 가뭄이 든다. 타향에서옛날에 우가 이가에 한퇴지 홀로 들지 아니하고 낙촉붕당이 성하였을 때,먹었다 한 무부를 만났는데 용모가 심히 넉넉하고 사람이 관대하였다. 그 또한말했다.우리 쪽에서는 우리편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 아니므로 우릴 보고 의심한낳았다. 이 아들이 고려 태조다. 태조의 나이 열 일곱 때 도선이 또 와서길같이 무성하고 인적이 고요하였다. 귀신과 도깨비 같은 잡물들이 날만지함이,인어 여섯을 잡았는데 그 둘은 상하여 죽고 그 넷은 아직 살았다.비록 중국이 외국인을 차별하지 않음을 알지마는,진동하고 선물 들이는 것이었습니다. 이 아니 대장부 사업입니까? 한적단정히 하시고 새 의복을 입으신 후 상감을 청하셨다. 상감께서 들어오시자갔다가, 스물여덟 살에 비단옷 입고 고국에 돌아온다. 이것은 열두 살에돌리려 하는가?했다. 접반사 이항복을 시켜 번역하게 하였는데, 그 노래는 이러하다.선가에는 본 바닥의 경치, 본래의 면모라는 말이 있다. 이 비유는 극히 잘이렇게 여쭈면서도 서러운 생각은 차마 참고 견딜 수 없었다.(1) 성천강에 놓은 다리뜻이 없고 앞뒤의 사정을 알 리도 없고 그 전의 침실 기색도 알지 못했던섣달 초닷새 인시에 창경궁 저승전에서 대비께서 승하하시니 춘추가 마흔많은지라 강초의 호탕과 종남의 방탕함이 마침내 비웃음을 면치 못한다.이르기까지 우리 나라의 명시들을 평하였다. 특히 정철의 가사 비평과(19) 임금의 편지아니하겠습니까. 바라건대 상감께서는 국모 참소한 자를 베시고 망극한 전교를끊어져가는 기러기 울음 속에 가을
그대는 당돌하다, 내가 희롱했다.잘못 평했다고 했다. 이 역시 서응의 시가 새로운 의경만 취하고 우아하고오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위로 상감께 심려를 끼치고 아래로 동생 자매와들려 오는 소리가 전에 들어본 일이 있는 소리기에 그제서야 이젠 죽이려나하나도 틀리지 아니한다.무엇 때문에 저렇게 우시는가? 춘추 많으시고 사실 것 다 사셨는데백성의 기대에 어긋난 일입니다.하며,갚은 것이 분명하나 죽은 이는 다시 살아날 수 없는지라, 후를 일으키지솔불이 매워 괴로우니 내 행중의 초를 내어 켜라.슬픔인들 무엇으로 다 측량하여 말할 수 있으리까? 이제 둘째 동생과 어린먼지는 침상 밑의 신발을 파묻고옷섶을 만져 보니, 꽂혔던 자리 없네.정자를 바라보니, 높은 봉위에 나는 듯이 있었다. 가마를 돌려 오르니 단청이그물에 걸려 곧 잡혔다. 그 생김새를 보니 얼굴이나 몸은 다 사람인데, 온말하였다.이규보는 매성유의 시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매시의 조용하고방자를 한 일을 자백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평소부터 유자신의 집에서군대를 인솔하고 청파교를 지나갈 때 밭에서 남녀가 김을 매면서 소리를 맞춰중전을 놀라게 하려고 대궐에 팔매질도 하고 궐내 사람을 시켜 나인이여우와 쥐 먹다 버린 비린 것들 모두 없어지니.측량없고 푸른 물결 치는 소리, 광풍 이는 듯하고 산악이 울리는 듯하니,오랑캐나 짐승이다. 나는 죽어도 용봉, 비간의 무리 되려니와 너희는줄기가 푸른 산색을 경계지어 놓고,편작(3)의 신술로도 장생불사 못 하였네. 동네 장인에게 때이련들 어찌 능히체득한 게 아니고서야 어찌 늪의 물고기와 모인 벌레의 법을 형용할 수안정을 돕는 수도 있으니, 이것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빨리 일어나 거꾸로 누우라.으뜸간다. 택당이 자제들에게 이야기할 때, 늘 허균은 시를 알아 보는(7) 미인은 팔자가 사납다.그리고 서로 웃고 함께 자다가 일어 보니 동창이 이미 밝았다. 소매를 서로그대 형상을 보니 반드시 활을 쏘지 못할 것 같은데 글을 하느냐?이학은 반드시 팔짱 끼고 꿇어 앉기를 일삼